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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가는 노동

<온다 칼럼> 임윤희(평등평화세상 온다 사무국장)

뉴스99 |

 

윤석열 정부는 취임 후 노동 개혁을 국정과제로 내놓았다. 노동시장 개혁 방향을 연구한다는 명목으로 ‘미래노동시장연구회’라는 기구도 출범시켰다. 노동시장을 연구한다는 연구회지만 노동자는 없었다. 노동정책이지만 노동자의 이야기는 담지 않겠다는 의미가 만연히 보인다.

 

출범 5개월만인 2022년 12월에 ‘공정한 노동시장, 자유롭고 건강한 노동을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권고문을 발표했다. 권고문을 살펴보면 윤석열 대통령의 후보 시절 노동정책 공약 그리고 기업이 오랫동안 요구했던 사항들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권고문에 나온 정책 중에는 2023년 3월 정부가 입법 예고를 발표한 노동시간 유연화가 있다. ‘노동시간 유연화’는 일주일 최대 69시간까지 일하도록 법으로 허용하는 정책이다. 현재 노동시간은 52시간(주 40시간, 연장 12시간)이며 69시간으로 노동시간이 더 늘어나는 것이다. 이는 노동자의 장시간 근무를 가능하게하며 노동자의 과로사 위험과 작업장 안전사고가 늘어나게 한다. 정부는 장시간 노동에 대한 대책으로 초과한 근무시간 만큼 저축해 두었다가 휴가로 사용하는 근로시간저축계좌제 제도를 만든다고 한다. 휴가를 저축해놓는다 한들 휴가를 다 쓸 수 있을까? 우리나라 노동자의 연차휴가 사용률은 70%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또한, 연장·야간·휴일근로를 수당으로 지급하지 않아도 됨이 합법화되고, 그동안 휴식을 포기하는 대신 수당을 통해 합당한 보상을 받아왔던 노동자들은 임금이 줄어들게 된다.

 

이 노동정책은 노동자들의 현실을 반영하지 않고 기업의 기준에만 맞춘 노동 악법이다.

정부는 정책을 발표하며 급변하는 세계와 선진국에 발맞춰 노동시간 유연화를 해야 한다고 했다. 과연 우리는 변화하는 세계와 발맞춰 갈 수 있을까?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다섯 번째로 노동시간이 많고, 자살률이 가장 높으며, 노동자의 자살 원인 1위가 ‘과로’이기 때문이다. 선진국은 노동시간이 우리만큼 길지가 않다. 근본적인 출발점이 다른데 어떻게 같이 발맞춰 갈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권고문 제목인 ‘~건강한 노동을 위하여’는 참으로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타깝게도 글을 쓰고 있는 현재 노동자가 과로사한 소식이 들려왔다. 서울 한복판 고층 빌딩에서 나흘 동안 퇴근하지 못하고 62시간 연속으로 일한 경비노동자가 심근경색으로 사망하였다. 노동시간 유연화를 입법 예고한 시점에서 정부가 내놓은 정책이 노동자들이 위험에 내몰리게 될 수도 있는 악법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게 된다. 수많은 노동자 목숨을 잃으면서 일터에서의 안전과 건강을 오랫동안 계속 이야기하고 있지만 바뀌지 않는 현실과 더딘 발걸음에 씁쓸함이 몰려온다.

 

노조탄압, 노동유연화 입법 예고를 시작으로 윤석열 정부는 노동 악법들을 계속해서 추진할 것이다. 정부는 근속기간에 따라 임금이 오르는 호봉제를 임금 불평등의 주원인으로 보고 임금체계를 능력과 직무 중심으로 개편하려 한다. 실제 임금 불평등의 핵심은 원·하청 불공정거래, 재벌중심 경제체제, 무분별한 비정규직 양상에 있는데 그 문제를 보지 않고 현재의 임금체계와 노조만을 비판하고 있다. 임금이 능력과 직무 중심으로 개편되면 경쟁주의 사회가 더 심해지고, 임금협상도 업무 성과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제대로 협상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노동자의 안전이 담겨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약화시키려고 한다. 들려올 노동악법들이 노동자의 삶을 얼마나 어렵게 만들지 두렵고 걱정된다.

 

노동이 거꾸로 가고 있다. 옛날로 다시 돌아가려 한다. 5인 미만 사업장, 비정규직 노동자, 임금 격차, 파견 노동… 해결할 노동 문제들은 넘쳐나는데 정부는 노동자의 삶을 고민하지 않는 정책들만 내놓고 있다. 기업의 이익 확대만을 고민할 뿐이고, 노조를 불법화하여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자신들의 이익을 확보하고 유지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모습들이 혐오스럽다. 거칠게 불어오는 노동개악을 우리는 반드시 막아야만 한다.

 

노동이 후퇴되는 모습을 더이상 볼 수 없다. 전태일노동자가 지켜온 평화시장 시절부터 지금까지 우리의 노동환경은 우리가 더 잘 알지 않은가?

노동자들의 투쟁은 개인의 이익을 위해 싸워온 일이 아니다. 모두를 위해 모두가 안전하게 일하고, 잘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거리에서 현장에서 싸워온 것이다. 되돌아가지 않기 위한 움직임에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한다. 우리는 대부분 노동자다. 나의 문제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고, 노동자를 위한 노동을 위해 함께 연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