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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평화대로 살게 놔두라!

성주 사드철거 연대투쟁을 다녀와서

뉴스99 기자 |

- 전국금속노동조합 경기지부 시그네틱스 분회 남옥연 조합원

 

이런저런 일상과 이동수단이 녹록치 않은 이유로 엄두를 낼 수 없어 그동안 가보지 못했던 그 곳. 처음 큰맘 다져먹고 차편까지 빌려가며 떠나는 날, 산불 때는 그렇게 기다려도 오지 않던 비가 진눈깨비가 되어 내렸다. 그동안 따뜻했던 기온은 뚝 떨어져 차안에서 조차 오들오들 떨리는 어둑한 이른 아침에 성주로 떠났다. 고속도로에 진입하고서 진눈깨비는 함박눈으로 바뀌고, 한창 달리던 고속도로 한 가운데에서 앞차가 흩뿌린 물먹은 눈 뭉텅이가 앞 차창을 덮치는 순간, 저승에 먼저 도착하는 줄 알았다.

 

여느 곳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시골 농촌의 풍경. 참외 모종이라도 심은 건지 푸른빛이 내비치는 비닐하우스들과, 농한기의 논밭들과, 소담한 시골집들을 지나 커다란 비닐하우스 앞에 도착했다. 마을회관 앞마당에 비닐하우스를 치고 사용하는 투쟁본부는 밀폐식이 아니라, 지붕만 있는 형국이어서 한데 바람이 그대로 들이쳐 바깥이나 진배없었다. 다행히 커다란 화목난로가 우리 때문에 주말을 반납한 현장활동가 선생님 두 분과 함께 맞아주었다.

 

활동가 선생님들에게서 사드배치의 연혁을 듣고, 최근 국내 정세와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 속에서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가야 하는 가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떤 정권이 집권을 했던지 간에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 한미동맹에 관한 한 정부의 입장이 바뀐 적은 없었음을 다시 확인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분하기만 했다. 사드는 방어체계이고 공격무기가 아니니까 덜 위험하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했던 게 와장창 무너지고 강대국사이에 전쟁이 난다면 제1표적은 사드가 배치된 우리나라 성주가 될 것이라는 사실과 우리 뜻에 상관없이 또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사드기지는 설비가 완전하지 않아 운용이 어렵다. 완전배치 되어 있지 않은 지금, 아직 기회가 있다. 새 정부는 더욱더 사드 완전배치를 위해 몰아칠 것이고 우리는 기필코 막아야하는 막다른 길에 서있다. 하지만 우리가 언제는 안 싸웠나. 우리는 계속 싸울 것이고, 우리 땅의 평화를 지켜내야 한다는 다짐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마을 어귀와 투쟁본부 안의 많은 문구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어느 고등학교에서 쓴 펼침막 문구였다. “평화는 평화대로 살게 놔두라.” 과거에는 제국주의, 현재는 평화의 가면을 쓰고 밑구멍에서 전쟁을 부추기며 자기나라의 이득을 챙겨가는 패권주의, 그것에 맞싸우지 않고 저는 아닌 척 동조하고 협조하는 정권, 가증스런 미소로 국민들을 속여 제 이득을 챙기는 정치인들과 언론들이 있는 한 우리의 자주독립은 멀었고, 누리고 있다고 생각한 평화는 없음을 새삼 알았다. 평화를 이 땅에 살게 하려면 지난날의 뼈아픈 역사를 잊지 않는 것, 진실을 알아가는 것, 그리고 알아낸 진실을 알려나가는 것. 진실을 알려면 투쟁현장에 직접 가보는 것, 그 곳에서 싸우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것을 함께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대로 평화롭게 살고 싶다. 그러려면 우선 미국의 무기 사드를 막아야한다. 우리의 평화를 그 누구에게도 간섭받고 싶지 않으니까.

 

소성리 마을에는 여느 농촌처럼 고령자들이 대부분이다. 사드기지로 들어가는 설치 장비를 막으려고 매일 부딪혀 싸워온 5년에 이르는 긴 싸움 동안 아프지 않은 곳이 없는 주민들. 우리가 간담회를 하고 도시락과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동안 마을 사람은 보지 못 했다. 그런데 어디서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 우리는 알 길이 없지만, 이곳에 일어나는 사소한 모든 일을 마을 사람들은 다 알고 계시다고 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나오다 며칠 아파서 운신을 못하시던 80 넘은 할머니께서 그 날 아침 잠시 나오신 길에 “나는 미군이 이 동네 돌아다니는 꼴도 못 보겠고, 사드 있는 꼴도 못 보겠으니, 내 숨이 붙어 있는 한 이런 땅을 내 자식들에게 물려 줄 수 없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그 말씀을 들은 활동가 선생님은 눈물이 울컥 나왔다고 하셨다. 그 말씀을 전해 듣고, 야근 후 전날 입은 얇은 옷차림으로, 간부수련회 후 3시간 자고... 저마다 녹록치 않은 전날의 일정 끝에 무거운 몸덩이에 악천후를 무릅쓰고, 칼바람이 들이치는 비닐하우스 투쟁본부에서 벌벌 떨면서 끼니를 때웠어도, 그 모든 수고로움 못지않게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주를 떠나기 전 사드기지로 올라가는 길은 아까 본 평범한 시골마을과는 사뭇 달라서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겹겹이 철조망을 두른 바리케이트가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봄이 더 가까이 오면 벚꽃이 꽃동굴을 만들 것 같은 그 길목에, 준비해 간 펼침막을 걸며 여기가 평소 우리가 눈 감고 있던 전쟁터임이 가깝게 와 닿았다. 4월이면 사드배치 5주년이 된다. 해묵고 낡은 펼침막들을 정리하고 새로 건다고 한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성주를 찾아 평화를 지키는 버팀목이 되기를 바래본다.

 

이번 방문은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안산지부 통일위원회 주최로 현대위아안산지회, 대창지회, 시흥안산지역지회(유진분회, 시그네틱스분회)에서 함께했다.

 

사드 뽑고, 평화 심자! 사드가고, 평화오라!

한반도 평화 위협하는 사드철거! 한미동맹파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