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99 기자 |
‘청년’은 변화를 이룰 가능성을 지닌 시기, 또는 집단이라는 점에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청년’은 빈번하게 ‘미래’나 ‘희망’ 같은 낱말과 함께 쓰이곤 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한국 사회에서 청년이 주목받게 된 것은 꽤 부정적인 이슈 때문이었다. 그것도 한참 전에 시작됐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청년실업이 사회문제가 되면서부터, ‘88만원 세대’ 담론을 넘어 현재까지 대한민국의 청년은 최고의 학력과 스펙을 가져도 비정규직 노동자로 대표되는 저임금과 고용불안정의 덫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다. 게다가 ‘K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주식이든, 코인이든 뛰어들기도 했다.
정치권에서 이런저런 대책들이 발표되고, 마치 유행어처럼 모두가 ‘청년’을 말했지만 청년들의 삶은 여전히 고통 속에 있다. 현재의 청년은 단지 취업과 돈 문제를 넘어 여성과 남성을 가르고 대립시키는 혐오정치, 결혼과 출산이라는 틀에 박힌 생애주기, 높은 우울증과 자살률까지 얼마나 더 고달픈 현실과 마주해야 할까?
안산 지역에서 10년 째 청년들의 고통을 대변하고 정치와 기득권에 청년에게 필요한 정책을 제안해 온 안산청년네트워크에서 청년 당사자를 만나 내밀한 대화를 나누고 대안을 찾는 과정을 열었다. 안산청년네트워크가 주최한 <별의별 청년 이어말하기>는 ‘여성 청년’, ‘주거독립 청년’, ‘장애인 청년’ 세 가지 의제로 청년 당사자들이 직접 한 자리에 모여 그룹 인터뷰를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안산청년네트워크 관계자는 “다양한 청년들의 이야기, 삶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기록해 이후 정책 및 대안 마련을 시도해보고자 한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별의별 청년 이어말하기>의 첫 번째 시간은 9월 26일 오후 7시 안산 스페이스오즈에서 진행된 ‘여성 청년’들의 이야기였다. 안산청년네트워크 소속 청년 활동가들과 여성 청년들이 모여 대화를 이어갔다.
<별의별 청년 이어말하기> 프로그램을 진행한 ‘평등평화세상 온다’ 임윤희 사무국장은 “OECD국가 중 한국은 성별 임금격차 가장 큰 나라이며 20대보다 30대가 되면 그 격차가 더욱 벌어진다. 게다가 여성 청년 노동자들이 취업에서부터 진급, 경력단절 등 직장 내에서 받는 크고 작은 차별이 존재한다.”며 또 “사회적 불안이 큰 요즘 다양한 이유로 생활하는데 있어 불편하고 불안해야 하는데 여성이자 청년으로써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듣고 향후 안산시 청년정책에 정책을 제안해보고자 한다.”고 포문을 열었다.
그룹 인터뷰에는 안산에 거주하거나 활동하는 2030 여성 청년 5명이 참여했다. 첫 순서로 본인의 요즘 하루 일과와 청년 정책에 대한 경험을 서로 나누었다.
직장에 다니다 잠깐 쉬고 있다는 A씨는 “요즘 쉬고 있는데도 오랫동안 출근했던 버릇으로 언제나 아침 6시면 기상한다. 주로 하루 일과는 도서관에서 보낸다.”며 “9년 정도 일만 했었기에 이어서 바로 취업하고 싶지는 않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싫어서 도서관에서 자격증 준비를 하고 있다. 예전에는 취직을 안 하면 뒤처지는 것 같고 조급했는데 오히려 이제는 그런 마음이 없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생이라는 B씨는 ”아침 8시 반에 일어나서 식사하고 책을 좀 읽다가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는다. 집에 와서는 운동도 하고 저녁에 따로 2시간 이상 공부도 한다. 대학 3학년이다 보니 취업준비로 공부도 해야 되고 바쁘게 살고 있다.“고 하루 일과를 소개했다.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고 소개한 C씨는 ”일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일과가 다른데 일이 있는 날은 직장이 멀어서(천안) 아침 6시에 기상해 출근한다. 지하철을 이용해 출퇴근 시간이 왕복 5시간 정도가 걸리는데 주로 자거나 책을 읽거나 지하철에서 할 수 있는 걸 한다. 일이 없는 경우에는 방학 중인 학생들과 같이 불규칙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며 설명했다.
청소년 관련 일을 한다는 직장인 D씨는 “새벽 5시 반에 일어나서 배드민턴을 치고, 8시 반 출근해서 저녁 6시 퇴근한다. 저녁에도 배드민턴을 칠 때도 있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기도 한다. 배드민턴을 1년 반 정도 레슨도 받고 가능하면 운동을 한다.”고 전했다.
직장에 다니고 있다는 E씨는 “아침은 가장 정신없는 시간인데 씻고 다시 눕곤 한다. 엄마의 잔소리에 일어나서 9시 반까지 출근하고 저녁 6시 칼퇴근을 하고 싶지만 보통 7시 넘어 퇴근한다. 저녁에는 스피닝 운동을 하고, 집까지 걸어가는데 건강을 챙겨야 되는 사정이 있어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고 하루를 설명했다.
이어 청년정책에 대한 경험을 나누었는데 경기도 청소년 교통비 지원, 경기도 청년기본소득, 경기도 청년복지포인트, 반값등록금 지원, 서울시청념임차보증금 지원, 근로장려금, 국가장학금, 청년희망적금, 청년우대형주택청약종합저축, 안산시 청년공간 상상대로 등 다양한 정책에 대해 이야기했다. 청년기본소득 정책 초기 지역화폐로 준 것이 불편했던 경험, 청년기본소득 지급 연령대가 확대됐으면 좋겠다는 바람, 청년복지포인트 정책 자격요건이 까다로워 아쉬운 점 다양한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이어서 오늘 그룹인터뷰의 핵심 주제인 여성 청년으로 살면서 힘들었던 것들을 나누는 시간이 진행됐다.
A씨는 남성 비율이 높은 제조업 회사에 다녔었는데 6년정도 다니는 동안 여성이 차장급 이상으로 진급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다른 직장(통신회사)에서도 15년 이상 근무한 여성 상사가 대리 직급에 멈춰있는 등 여성의 진급에 차별을 두는 현실을 경험했다고 한다. 본인도 경력직으로 옮긴 회사에서 본인보다 늦게 들어온 남성이 점차 연봉에서 차이가 나고 진급도 먼저 했다고 하는데 임원회의에서 “이번 해는 여직원 진급은 없다.” 이런 말을 들어보기도 했다고 한다.
B씨는 연애와 데이트 스킨십에 있어 남성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문제, 취업에 대한 걱정 등 고민이 많다고 전했다. 또 남성들이 보통 자기 생각을 쉽게 표출하는 것에 비해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생각을 드러내는 것에 자유롭지 못한 부당한 시선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C씨는 이전 병원에서 원무수납 업무를 했는데 여성에게는 한없이 무례하다가 남성 직원이 와서 얘기하면 고분고분 돈을 내더라는 경험을 공유하기도 했다. 또 독립을 하고 싶은데 여러 안전문제로 독립이 무섭다고 했다. 금액을 맞추다 보면 안전에 취약한 현실을 마주한다는 것이다. 위험한 밤길, 공동화장실, 몰카 등 여성으로서 내가 겪을 수 있는 일, 내가 겪지 않으리라는 법 없는 그런 일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최근에도 취업 면접 시 여성에게 “애인 있냐.” 같은 무례한 질문이 있었다는 경험도 밝혀 참가자 모두가 분노하기도 했다.
D씨는 가부장시대에 살아가다 보니 아직도 여성의 역할이 정해져 있고, 우리 가족 안에서도 집안일은 당연히 엄마의 몫이 된다고 설명했다. 또 본인은 화장을 잘 안하는데 자꾸 화장 이야기를 한다거나 직장에서, 청소년들 보는 앞에서도 성차별 언어나 성적 역할을 강조하는 말들을 한다고 전했다.
E씨는 다행인건지 성차별적인 경험을 거의 겪지 않은 편이라고 했다. 대학에서도 여자 휴게실, 생리공결제 등도 주어진 권리들을 잘 누렸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물론 주변을 둘러보면 차별당하는 경우를 보긴 했다고 전했다.
참가자들은 서로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앞서 나눈 여성 성차별 문제들은 정책적 접근도 중요하지만 우리 사회의 인식과 문화적 개선이 우선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한 참가자는 “여성 입장에서 분명 차별은 존재하지만 온전히 누구의 잘못이라고 단정 짓고 극명하게 나누자는 것이 아니라 대화와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부당함을 바꾸고자 하는 취지로 ‘페미니즘’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사회여야 하는데 말도 꺼낼 수 없게 만드는 거부 반응, 이런 분위기를 조장하는 미디어도 문제다.”라고 생각을 나누기도 했다.
<별의별 청년 이어말하기>는 오는 10월 10일 두 번째 시간으로 ‘주거독립 청년’이 모여 그룹 인터뷰를 진행하고, 10월 24일 세 번째 시간으로 ‘장애인 청년’이 모여 이야기 나누는 것으로 마무리 한다고 한다. 청년의 다양한 현실과 어려운 점을 당사자들이 모여 대화를 통해 생각을 나누고 나아가 대안을 찾는 활동까지 이어질 수 있는 <별의별 청년 이어말하기>의 이후 행보 또한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