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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6월!

이경원 안산더좋은사회연구소 소장

뉴스99 |

 

6월로 기억되는 역사적인 두 장면이 있다. 1965년생인 내게 역사에 길이 남을만한 일이 6월만 해도 두 번이나 있었다는 사실이 우리가 사는 시대가 얼마나 격동적인 시대인지를 말해 준다.

 

첫 번째 장면은 87년 6월항쟁이다.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권력을 찬탈한 살인마 전두환은 대통령 직선제 요구를 묵살하고 호헌조치를 발표하였다. 이에 맞서 민중들은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6월 10일 노태우가 민정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면서 민중들의 투쟁은 급격히 분출되었고, 끝내 노태우에 의해 6.29선언이 발표되었다. 군부독재에 맞선 민중들의 민주화 투쟁은 헌법을 개정하고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였다. 그때 개정된 헌법체제를 37년 동안 이어오고 있는데 이를 ‘87년 체제’라고도 한다.

 

두 번째는 6.15남북공동선언을 발표하는 장면이다.

2000년 6월 13일.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국제공항 비행기에서 내리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공항으로 나가 마중하면서 분단 역사상 처음으로 남북의 정상이 손을 맞잡고 얼싸안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시작된 남북정상회담에서 서로 합의하여 발표한 6.15남북공동선언은 그야말로 통일의 이정표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통일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았고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치면 통일이 어렵지 않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우리는 2000년대를 ‘6.15시대’라고 불렀다.

 

이러한 역사적인 일은 하루아침에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인고의 시간이 있고, 누군가의 희생도 있었고, 들고 일어서는 민중의 투쟁도 있어야 한다. 광주시민 항쟁이 그랬고, 박종철 이한열 열사와 민중들의 투쟁이 그랬다. 누군가는 사선을 넘어 남북을 오가야 했고, 헬기로 쏟아붓는 최루액을 뒤집어쓰며 싸워야 했다. 누군가는 목숨을 잃었고 또 수많은 누군가는 감옥에 가야만 했다. 그 뒤편에 구름 같은 민중이 없고 서는 이룰 수 없는 역사다.

 

우리는 몇 해 전 촛불을 들었다. 사람들은 이를 촛불혁명이라 불렀다. 박근혜를 권좌에서 끌어내렸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돌아보면 혁명의 뒷자리가 너무도 초라하다. ‘이게 나라냐’고 외쳤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원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난 지금 윤석열 정부라니 참 기가 막힌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많은 사람이 문재인 정부를 탓한다. 촛불로 세워진 정부가 시민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했으니 그럴 만하다. 국회 의석을 180석이나 몰아 줬는데 제도를 개혁하지 못했으니 실망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재인 정부 5년의 결과가 윤석열 정부라니 참혹하다. 수염을 허옇게 기르고 TV에 비쳐진 문재인 전 대통령을 보면 화가 먼저 치밀어 오른다. 그러니 나도 문재인 정부를 탓하고 있었던 거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모든 일을 지난 정부에게 책임을 떠밀기에는 무언가 찜찜하다. 애초에 시민의 요구를 실현하기에 부족한 정당과 대통령에게 모든 것을 맡겨 놓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꿈꾸는 것은 혁명이라고 부르기에는 좀 어설프다. 촛불혁명이 혁명이 되려면 적어도 문재인 정부 시기에도 시민의 지향을 담은 후속적인 투쟁이 필요했던 것이다. 적어도 민의를 정확히 반영할 수 있는 선거제와 국가보안법 정도는 해결해야 되지 않았을까. 지난 일이 되었지만 그들에겐 그런 의지도, 시대적 사명도, 인간에 대한 존엄을 생각할 수 있는 철학도 없었던 것이다.

 

윤석열 정부 1년 만에 민중들은 다시 윤석열 퇴진을 외치며 거리로 나서고 있다. 지난 정부의 경험이 시민들이 다시 거리로 나서는 데서 주저하게 하지만 더 이상의 인내력에도 한계에 다다랐다. 현재 상황이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여야 할까 심사숙고해야 한다. 지난날의 한계를 반복할 것인가? 거리로 나서는 시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줄 것인가? 지금 당장 우리는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시대를 구분짓는 수 있는 혁명을 꿈꿔보자.

다시, 6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