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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수 그늘의 행방불명

<온다 칼럼> 나현(평등평화세상 온다 회원)

뉴스99 |

 

 

매일 지나는 길가의 풍경이 유독 분주하다. 관리원들은 뜬금없는 주차 이동 안내를 하느라고 바빠 보인다. 올해도 어김없이 시작되는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길가에는 갈색의 뭉텅이들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가로수의 일부였어야 할 것들의 무덤이다. 날붙이에 가지를 도륙당한 가로수들은 그 흉터를 가리기라도 하듯 황급히 새잎을 틔우고 있었다.

 

우리가 매일같이 지나다니는 길가에 뿌리와 가지를 뻗고 살아가는 존재들을 우리는 가로수라고 부른다. 사전적으로는 ‘도시의 미관과 보건 등을 위해 길을 따라 줄지어 심은 나무’라는 의미를 가진다. 필요로 인해 식재된 만큼, 도시에서 가로수는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우선 가로수는 도시의 자연적, 미적 경관을 조성한다. 가로수의 녹음을 보며 시민들은 심적인 만족감을 얻는다. 서울, 청주, 이외에도 여러 지역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잘 가꾼 가로수길은 그 자체로 상징성을 가지는 명소가 되기도 한다. 다음 기능은 도시기후 조절인데, 직사광선을 차단해 그늘을 만들고 대기 중에 수분을 방출하여(증산작용) 기온 상승 및 도심열섬 현상을 완화한다. 대기정화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가로수의 대표적 기능이다. 도시에서 발생하는 분진, 유해물질을 흡착하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이외에도 가로수는 방풍/방음을 통해 생활환경의 쾌적성을 높이고, 운전 시 시선유도 등 도로 안전에도 기여한다.

 

살펴보았듯 도시에 있어 가로수의 중요성은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우리 주변의 가로수는 과연 그 중요성만큼의 관리를 받고 있는 중일까? 대답은 ‘아니요’이다.

 

‘닭발 나무’, 가지 대부분이 잘려 기둥만 남다시피 한 볼품없는 가로수 형태를 일컫는 말이다. 길을 걷다 보면 이러한 닭발 나무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장소에 따라서는 정상적인 가로수를 찾는 게 더 어려울 때도 많다. 닭발 나무를 양산하는 것은 다름 아닌 과도한 가지치기(강전정, 과전정)이다. 과전정으로 잎과 가지를 상실한 가로수는 보기에도 흉물스럽거니와, 앞서 언급한 역할들을 정상적으로 수행하지 못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가지가 잘린 부위의 상처가 부패하면 한순간에 쓰러질지 모르는 위험물이 되기도 하고, 상처를 이기지 못한 채 고사해 버리기도 한다. 가로수의 기능을 저해하고 죽이기까지 하는 지금의 가지치기 행태는 도무지 ‘관리’라고 부를 수 없는, 사실상의 벌목이다.

 

 

어째서 이런 ‘유사 벌목’이 계속 발생하는가? 잦은 민원, 경제논리, 현행 기준의 부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선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건물이나 간판에 닿거나 시야를 가린다는 이유로 가로수 가지를 잘라 달라는 민원이 제기된다. 지자체는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가지치기를 시행한다. 문제는 그동안 가로수 가지치기에 대한 적정 기준이 규정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잘라야 하는가? 기준이 부재한 상황에서 ‘한번 자를 때 많이 잘라야 한다’는 경제논리에 의해 가로수의 몰골은 더욱 황폐해진다. 민원 해결에만 급급한 나머지 사안과 상황을 상세히 살펴보지 않는 행정의 안일함도 문제다. 미국의 경우 수관(나무의 가지와 잎이 달린, 원 몸통 이외의 부분)의 25% 이내 범위에서만 전정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전문가에 따르면, 해당 25%를 초과하는 전정이 계속될 시 나무의 골격이 손상되고 해충 감염의 위험성이 높아지는 등 수목 건강을 악화시킨다고 한다. 문제투성이인 현행 가로수 관리의 문제점을 알리고 개선하기 위해 페이스북 그룹 ‘가로수를 아끼는 사람들’(현 가로수시민연대)은 모니터링과 시민제보 등의 활동을 이어왔고, 서울환경연합은 지난해 초 ‘올바른 가지치기를 위한 작은 안내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무지성’ 가지치기로 당장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 가로수들은 우리에게 기대만큼의 편익을 제공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 기후위기 대응을 내건 도시숲 관련 사업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것을 보노라면, 그 이전부터 도시숲의 역할을 수행해 온 것이 바로 가로수라고 외치고 싶어 진다. 길가의 나무를 학살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곳에 나무를 심는 반쪽짜리 사업에 얼마나 대단한 효과를 기대하겠는가. 도시에서 가로수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들에게 정상적인 생육환경이 보장된 이후에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가로수의 존재가 시민들에게 더 나은 삶의 질을 보장한다면 시민 또한 가로수의 관리 주체로 나설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한 구조적 장치 또한 마련되어야 한다.

 

가로수는 우리에게 단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계나 시설물이 아닌 ‘생명’이다. 따지고 보면 가로수를 통해 우리가 얻는 편익은 그들의 존재와 생명 활동의 부수적 산물을 그저 취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가로수 자체가 ‘도시 환경 개선’과 같은 목적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가로수의 기능을 논하기 전에 가로수가 존재 자체로 보호 및 관리의 대상임을 인지해야 한다. 그리고 지자체와 시민들이 해당 인식을 전제로 논의하며 가로수를 위한 체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더욱이 안산시는 가로수의 보호, 관리에 적극적 의지를 보여야만 ‘도심녹지율 상위권’, ‘환경부 지정 환경교육도시’의 명성에 민망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