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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용기를 내서 새로움을 만드는 사람", 이혜정

신지은의 '마을人'

뉴스99 |

 

이혜정이 말하는 이혜정

 

사람들은 저를 풀립이라고 부릅니다. 제가 만든 닉네임이랍니다.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지닌 삶의 문제가 술술 풀리길 바라는 소망을 담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가끔 사람들이 "풀립에게 문제를 가져가면 잘 풀리는 것 같아."라고 말합니다.

 

풀립은 다양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나를 소개한다는 게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다'고 직무를 소개하는 건가, MBTI를 소개하면 될까 고민하게 됩니다. 둘 다 저를 다 담을 수 없을 듯합니다.

 

저를 소개하기 좋은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한 가지는 '설레는 사람', 다른 하나는 '2% 부족한 사람', 이 두 가지를 합치면 '생명이고 싶은 사람'이 됩니다. 사실 많이, 많이 부족한 사람이라, 그냥 ‘2%로만’이라고 표현할까 싶기도 해요, 하지만 모든 삶의 사건과 상황에 설레고 싶으니까, 설레는 사람도 붙여봅니다. 살아 있다는 증거일 테고 그 살아 있음이 또 누군가에게 살아 있음으로 전이될 것 같아요. 저는 그런 사람입니다.

 

도서관을 운영하는 일은 만만치 않다. 공립 도서관이 아닌 민간 도서관은 더욱 어렵다. 이혜정은 민간 도서관인 ‘명저읽는작은도서관’의 관장이다. ‘명저읽는작은도서관’은 상가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정말 어려울 텐데’하는 염려가 생기는,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이다.

 

신기하게도, 이혜정 관장은 그 어려운 일을 씩씩하게 척척 해낸다. 도서관 관장으로서 역할도, ‘일동상점가사람들’과 함께 재미나는 일을 만들 때도, 마을 정원사 역할도 다 척척 해낸다. 그 ‘척척’의 이유가 궁금했다.

 

 

'오늘 하루 인생을 살아간다는 마음으로'

 

신지은 : 도서관을 어떤 계기로 운영하시게 되었나요? 민간이 도서관을 운영하는 일은, ‘돈 먹는 하마’를 기르는 일이랑 같다는 농담도 있는데.

 

이혜정 : 2016년이었어요. 가지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지금 도서관 자리인 이 공간과 공간 월세 삼 개월 치를 낼 수 있는 돈, 딱 요것밖에 없는 거예요. 어떻게 하지 그러는데, 누가 그러는 거예요. 작은도서관을 해 보라고. 잘은 모르겠지만 궁금했어요. 책을 좋아하니까. 그래서 뭐가 필요하냐고 물어보니, 딱 세 가지만 있으면 된다는 거예요.

 

신지은 : 그 세 가지가 뭐였나요?

 

이혜정 : 책 천 권, 공간 열 평, 책을 읽을 수 있는 열람석 몇 개였어요. 아, 그럼 하면 되겠다 싶었어요. 공간이 있고, 책도 있으니까. 삼 개월하고 문을 닫을 수 있겠지만, 안 되면 문을 닫지 뭐, 우선은 내가 가진 걸 여기서 나누자는 마음이었어요.

 

신지은 : 어려운 결정인데. 저 같으면 불안해서 엄두도 못냈을 것 같아요. 원래 두려움이 없는 편이셨나요?

 

이혜정 : 아니에요. 저 원래 겁 많은 사람이에요. 마흔세 살부터 달라졌어요. 제가 회사를 그만두고, 남편은 교회를 개척하겠다고 하던 그 시기였어요. 아, 그 때 그 여수 바다를 잊을 수가 없네.

 

신지은 : 여수 바다?

 

이헤정 : 제가 마흔세 살 때여수 바다 앞에서 하늘을 쳐다보며 생각했잖아요. 이제는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고.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아니면 말고, 내가 못하면 말고 할 수 있는 걸 하자 그런 생각으로, 딱 오늘 하루 인생을 살아간다는 마음이 되었어요.

 

신지은 : 오늘 하루 인생을 살아간다는 마음,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는 것 같은 문장이기는 한데 그런 마음을 먹었다고 해도 도서관을 운영하기란 정말 힘들었을 것 같아요.

 

 

'지금 보고 있는 건 2%에 불과하다.'

 

이혜정 : 맞아요. 도서관 문은 열었는데, 정말 아무도 안 오는 거예요. 어떻게 하지 이러다 문을 닫나 하다, 내가 가진 게 뭐가 있나 생각을 했어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한테는 시간이 있는 거예요. 시간이 정말 남아돌았어요. 그래 시간이 있고, 책이 있으니까, 책을 들고 밖에 나가자 그 생각이 들었어요.

 

신지은 :책 수레가 그렇게 시작이 되었군요.

 

이혜정 : 동생이랑 둘이서 나가기로 했는데, 동생한테 그랬어요. 오늘 우리 미쳤다 하는 마음으로 나가자고. 큰 바구니 두 개를 샀어요. 수레를 수리해서 바구니 두 개를 붙이고. 이왕 미친 사람이라고 할 텐데, ‘미친 척을 더 하자’고, 수레에 커어다란 해바라기를 꽂았어요.

 

신지은 : 광경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아요. 심장이 쿵쾅거리지는 않았나요?

 

이혜정 : 떨렸지만 무섭지만은 않았어요. 제가 아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어요. 네가 지금 보고 있는 건 2%에 불과하다고. 네가 보고 듣고 아는 건 2%에 불과한데, 그 2%를 전부로 착각해서 두려워하면 안 된다고. 2%를 다 쓰기로 작정하고 발을 내딛자. 그럼 나머지 98%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더 있다는 느낌을 받을 거라고.

 

신지은 : 책 수레를 끌고 나간 날도 98%를 느끼셨군요.

 

이혜정 : 두 어 군데서 “저희는 책 안 읽어요.”라는 반응을 듣고, 마음이 무거웠지요. 그리고 ‘슈퍼마리오’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슈퍼마리오 사장님이 책을 엄청 좋아하는 사람이었던 거예요. 그분이 “이 책을 그냥 빌리는 건가요?”라고 물어보더니, 책을 빌리시는 거예요. 환하게 웃으면서. 그다음에 어디로 갔냐면 ‘만나떡집’이에요. 아, 정말. 어쩌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어떻게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신지은 :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이혜정 : 제가 “책 읽으시라고 왔어요.” 그랬더니 떡집 사장님이 “왜요?”라고 물어보시는 거예요. “우리 상가분들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어요. 교육도 받으러 다니기 힘드실 정도로 바쁘시잖아요. 세상이랑 접하실 수 있게, 제가 도와드리고 싶어서요.”라고 답을 했는데. 세상에나. 사장님이 일을 하다 일어나셔서, 양팔을 벌리고, 저를 꽉 안아주시는 거예요! 생각할 수 있어도, 이렇게 행동하기는 어려운데, 어떻게 이렇게 행동을 하냐, 너무 좋다고 그러면서 저를 안아주신 거죠.

 

 

'시도하지 않으면 만날 수 없는 새로운 세계'

 

이혜정 : 그 순간 결심했어요. 이 일은 꼭 해야겠다고. 나 이거 해야지 하고. 시도하지 않았다면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테니까요. 했으니까 볼 수 있었으니까요. 이렇게 하면 되겠다 싶었어요. 나는 그냥 용기만 내면 되겠구나. 모든 일에 그냥 용기를 내고 한 발을 내밀자, 두려운 건 안 보여서 두려운 거라고. 도서관이, 그분들에게 도움을 준 것 보다, 제가 훨씬 더 큰 용기를 선물받게 된 거죠.

 

신지은 : 흔히 문화예술의 목표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게, 관장님이 지금 하신 말씀과 비슷해요. 낯선 경험을 통해, 새롭고 다양한 세계를 만나자.

 

이혜정 : 저는 있잖아요. 낯섬에 대한 설렘이 있어요. 낯선 게 무서웠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낯선 걸 맞닥뜨리면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훨씬 더 커요. 만나떡집에서 그 순간도 그랬던 거잖아요. 전혀 예상하지 않았는데, 갑작스럽게 찾아온 선물이었어요.

 

그녀가 힘들고 어려운 많은 일을 척척 잘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아는 것 보다 모르는 게 더 많다는 사실이, 한 사람에게 어떤 용기를 전해 주는지 느껴졌다.

그녀의 말을 듣고 대화를 나누면서 알아버렸다. 이혜정은 그냥 일을 잘하는 씩씩한 사람을 넘어서는 또 다른 면모를 지닌 사람이다. 자신은 물론 세계를 새롭게 만드는 힘이 어디서 출발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었고, 이 앎을 보통의 사람들과 함께 유쾌하게 현실로 만들고 있었다.

 

우리는 마을 활동가와 마을 활동의 괴리에 대해서, 행정의 요구와 주민 자치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을 모든 사람에게 기대할 수 없다는 냉정한 현실에 대해서도 서로 동감했다.

 

 

신지은 : 마지막 질문입니다. 관장님을 살아게 하는 한 가지가 궁금합니다.

 

이혜정 : 음... 많이 고민이 되네요. 뭘까요? 아, 그래요 그거예요. 죽음이에요. 죽음이 있어서 참 좋다, 아니 좋다기 보다는 죽음을 떠올리면서 살 수 있으니까. 그래서 뭐랄까? 심플해져요. 보장되지 않는 내일 보다는, 오늘을 가지고 있으니까. 오늘에 대한 성실함을 가질 수 있잖아요. 죽음을 떠올리면서 살다 보면.

 

이혜정은 자신의 마지막 답, 죽음에 관한 답이 너무 무겁게 다가가지 않을까 염려를 비쳤다. 대부분 사람들은 죽음을 심각하고 무거운 것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혜정에게 죽음은 무겁고 심각하고 두려운 것이 아니라, 매번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죽음을 염두에 두는 그녀는 유쾌하고 발랄한 사람이다.

 

다시 마을을 떠올린다. 이혜정이 만났던 떡집에서의 그 순간 같은 사건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낯섬이 설렘이 되고, 설렘이 용기로 변하는 순간을 만드는 게 또한 마을 활동 아닐까? 많은 사람이 용기를 내서 새로움을 만날 수 있도록 하는 일, 우리의 마을 활동이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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