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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당신이 방 안에 갇혀 있다고 해보자. 이곳에서는 하루에 한 번 음식이 제공되는데, 딱 4인분의 양이 제공된다. 다만 이 음식은 당신 혼자 먹는 것이 아닌, 4명의 사람과 나누어 먹어야 하는 것이다. 오늘은 당신은 우선권이 있어 이 음식들을 챙겨 하루에 두 끼를 먹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한 사람 몫만 챙길 수도 있다. 하지만 다음번에도 당신에게 우선권이 있을 것이란 보장은 없으며, 언제까지 갇혀 있을지 불확실하다. 이때 당신은 총 몇 인분을 챙기겠는가?
이 가정은 영화 <더 플랫폼>(The Platform, 2020)에서 나오는 수직 감옥의 상황을 변형한 것이다. 사실 이것은 롤스의 <정의론>에서 나오는 개념인 ‘무지의 베일’과도 연관이 있다. 자신이 언제 어느 위치의 권력자가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지의 베일을 써 인간성을 발휘할 인간이 얼마나 있을까. 아마 많은 사람이 영화처럼 필요한 양보다 과도하게 많이 가져가려 할 것이다. 그들이 다음에도 권위자의 위치에 있을지는 모르기 때문에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쩌면 위의 상황들이 다소 극단적이라 의지와 상관없이 표출되는 ‘본능’이라고도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우리 사회에서 사지에 내몰리지 않아도 위와 같이 행동하는 경우는 없을까?
여기 바나나 한 송이가 있다. 바나나는 ‘농부’, ‘플랜테이션 주인’, ‘선적 처리업자’, ‘수입업자’ 등을 거쳐 마트로 옮겨진다. 당신은 대규모 마트 사장으로, 외국에서 바나나를 수입해 판매하고 있다. 당신은 바나나를 판매하기 위해 건물 ‘임대료’, 직원들의 ‘급여’, 그리고 바나나 ‘유통비’ 등 각종 비용을 지불한다. 만약 바나나 한 송이가 3천 원이라면, 그중 어느 정도를 받아야 당신에게 이익이 될까? 또한 당신에게 바나나를 가져온 사람들은 얼마를 배당받아야 공정할까?
이처럼 ‘배분’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우리의 곁에 가까이 존재한다. 단순히 바나나 한 송이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여 약자가 정당한 값을 받지 못하도록 한다. 그 사람이 특정하게 나쁘다는 것이 아닌, 세계의 산업구조가 그리 구성된 것에 가깝다. 대부분 수익은 힘과 권력이 있는 나라에 몰리며, 바나나를 재배하는 농부들에게는 정당한 값이 돌아가지 않는다. 자, 이 사실을 안 우리는 ‘정당한가?’라는 의문을 던져야 한다. 그리고 이 의문에 대한 답은 ‘공정 무역’이라는 개념을 알았을 때 유추할 수 있다.
공정 무역이라는 것은 ‘국가 간 동등한 위치에서 하는 무역’이다. 우리가 바나나를 사는 개발도상국은 물론 유통과 판매를 책임지는 국가 모두 동등한 입장에서 수익을 분배하는 것이다. 그 개념은 모두가 ‘일한 만큼 공정하게 수익을 분배 받는다’라는 지극히 당연하고 일반적인 상식을 지키기 위해 알아야 할 터다. 단순히 아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공정 무역 제품은 제값을 치르고 온 것이기에 다소 비싸게 느껴지므로 소비를 강요할 수는 없지만, 본래 소비하던 것들이 되려 싼값이었음을 인지해야 한다. 이제 우리나라도 단순히 소비자의 시선에서 재화를 사용할 게 아니라, 세계 시민의 눈으로 지갑을 열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무지하여 산 바나나로 부당함을 겪는 이들이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