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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일쌤의 99℃> 기다림 속에 꽃이 핀다.

청소년열정공간99℃ 책임교사 김부일

 

 

식물 앞에서 초라해지는 나.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수두룩하다. 제대로 돌보지 않아서 멀리 떠나보낸 아이들이 많은지라 죄짓는 일이라 생각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

 

삶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했던가. 99℃와 1℃ 앞에 포도나무 매화나무가 자리를 잡고 다양한 꽃이 담긴 화분들과 식구가 되기 시작하면서 식물 키우기에 젬병인 내가 청소년들과 함께 돌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자 집에서도 몇 개의 화분을 돌보게 되었다.

 

심지어 화분을 선물 받기도 한다. 얼마 전 재스민 화분을 선물 받았는데 잎사귀를 만져도 향기가(무지함은 착각을 부른다) 나지 않아 심드렁했었다.

 

“뭐야 재스민인데 왜 향기가 안 나는 거야?” 식물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난 툴툴대며 2~3일에 한 번씩 꾸준히 물만 줬다. 그렇게 한 달을 보냈더니 드디어 단아하고 예쁜 꽃이 피었다. 꽃이 피니 향기도 났다. 물을 주고 몇 마디 건넸을 뿐인데 꽃이 핀 것이다.

 

청소년들도 꽃과 같다.

 

생김새가 꽃을 닮았다기보다 꽃을 피우기까지 과정이 꽃을 닮았다.

어린이를 지나 어른이 되기 전 중간 과정에 놓인 청소년은 감정의 파도가 심하게 치고 여러 사람, 상황과 충돌하게 된다. 그래서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놀라운 일은 어느 시대를 살았던 청소년이든 세상으로부터 충분한 이해와 지지를 받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다.

 

청소년은 날씨를 닮았다.

 

감정이 날마다 다르고 어떤 경우는 몇 시간 만에 맑았다, 흐렸다 안개가 꼈다가 비바람이 치기도 한다.

그래서 청소년들과 지내면서 터득한 지혜라면 쉽게 단정 짓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잘 맞아주면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켰던 아이도 공간에 와서는 음식을 만들어 친구들과 나눠 먹을 줄 알았다. 말없이 앉아 있던 아이가 어느 날부터 친구와 교사에게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고 무기력해서 어쩌나 걱정했는데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며 활짝 웃기도 한다.

 

청소년 공간에 있다 보면 이 사회가 규정한 평범한 청소년의 삶과는 거리가 먼 친구들을 만나기도 한다.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거칠고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나들며 생활하는 것을 보며 어디서부터 문제를 풀어야 할까 조급한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걱정된다는 이유로 확 다가가 아이들 삶에 개입하고 싶은 유혹에 흔들리고 밤새 고민한 적도 있다. 그래서 몇 차례 아이들 삶에 깊이 들어갔다가 멀어지기도 하며 나의 한계를 인정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켜본 뒤에 아이가 필요하다고 도움을 청할 때 개입하는 것이 지혜라는 걸 배우기도 했다.

 

얼마 전 늦은 밤에 카톡이 왔다.

 

냥이(별명)었다. 카톡을 여러 번 짧게 보내 왔는데 내용은 이랬다. 자퇴해서 검정고시 관련 자료를 뽑아야 하니 99℃ 문을 빨리 열어달라는 연락이었다.

 

고양이를 닮아서 냥이라고 불리는 이 아이는 좋고 싫음이 분명하고 자신이 즐거운 일, 필요한 일을 참 잘 찾으며 살아간다. 그러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유분방한 행동으로 위험의 경계를 넘어설 때면 화가 나기도 하고 답답했다. 붙들고 야단치기도 하고 밥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지만, 대화가 잘 이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인정하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계를 인정하고 아이의 세계를 받아들이게 됐다. 오랜만에 오면 밥 먹자고 하고 편하게 쉬다 갈 수 있게 하는 게 교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막 일어나서 온 듯한 모습으로 나타난 냥이는 오자마자 검정고시 관련 서류를 검색하고 프린트를 했다. 그리고 친구에게 전화해서 검정고시를 같이 준비하자고 한다. 상대 아이가 시큰둥하게 반응하니 잘 생각해 보라며 전화를 끊는다. 내게는 검정고시 준비하는 청소년을 지원해주는 곳이 없냐고도 물어본다. 그래서 ‘안산시학교밖지원센터’ 선생님과 연락해서 알려줬다.

 

냥이는 참 야무지고 똑똑하다. 처음 만날 때부터 지금까지 공간에서 탕후루를 만들거나 춤을 추거나 알바비를 못 받아서 해결할 때, 갑자기 공부하겠다며 문제집을 복사할 때, 생일 앨범을 준비할 때도 늘 친구들 속에서 중심 역할을 하고 챙겼다. 자신과 친구들한테 문제가 생기거나 해결할 일이 있을 때 내게 연락을 하는 것도 냥이었다. 정말 대단한 능력이다. 타인과 관계를 맺고 어려운 일이 생길 때 도움을 청해서 해결하는 능력은 쉽게 가질 수 없다. 더군다나 십 대 청소년이 말이다. 요즘처럼 공부만 하거나 방치된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능력이다. 알바를 해서 엄마 용돈도 드린다니 또 한 번 놀랐다.

 

날씨처럼 변덕스러운 시기를 보내고 자기 삶을 살아가는 냥이를 보며 기다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아이가 성장통을 겪느라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해도 곁에 있는 어른들은 흔들리지 말고 지켜보며 밥 먹이고 편하게 쉬게 하면 어떨까.

 

몇 년 전 격렬한 사춘기를 보내는 아들과 지내는 일이 너무 힘들다는 어머니께 “많이 힘드시겠지만 아무 말 하지 말고 눈 딱 감고 밥 먹이고 잠만 재우세요.”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다. 몇 년 후 아이는 돈 벌어서 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 드리고 싶다며 열심히 일했다.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답답한 한숨과 차가운 시선, 잔소리를 거두고 언제든 따뜻한 밥 한 끼와 편하게 쉴 수 있는 잠자리다. 인정하고 수용하면 아이들은 잘 자란다. 그렇게 기다리다 보면 어느 날 훌쩍 커서 건강한 어른으로 피어난다.

 

기다림 속에 꽃이 피고, 꽃이 피어야 향기가 난다.

사람도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