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앞에서 초라해지는 나.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수두룩하다. 제대로 돌보지 않아서 멀리 떠나보낸 아이들이 많은지라 죄짓는 일이라 생각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
삶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했던가. 99℃와 1℃ 앞에 포도나무 매화나무가 자리를 잡고 다양한 꽃이 담긴 화분들과 식구가 되기 시작하면서 식물 키우기에 젬병인 내가 청소년들과 함께 돌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자 집에서도 몇 개의 화분을 돌보게 되었다.
심지어 화분을 선물 받기도 한다. 얼마 전 재스민 화분을 선물 받았는데 잎사귀를 만져도 향기가(무지함은 착각을 부른다) 나지 않아 심드렁했었다.
“뭐야 재스민인데 왜 향기가 안 나는 거야?” 식물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난 툴툴대며 2~3일에 한 번씩 꾸준히 물만 줬다. 그렇게 한 달을 보냈더니 드디어 단아하고 예쁜 꽃이 피었다. 꽃이 피니 향기도 났다. 물을 주고 몇 마디 건넸을 뿐인데 꽃이 핀 것이다.
청소년들도 꽃과 같다.
생김새가 꽃을 닮았다기보다 꽃을 피우기까지 과정이 꽃을 닮았다.
어린이를 지나 어른이 되기 전 중간 과정에 놓인 청소년은 감정의 파도가 심하게 치고 여러 사람, 상황과 충돌하게 된다. 그래서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놀라운 일은 어느 시대를 살았던 청소년이든 세상으로부터 충분한 이해와 지지를 받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다.
청소년은 날씨를 닮았다.
감정이 날마다 다르고 어떤 경우는 몇 시간 만에 맑았다, 흐렸다 안개가 꼈다가 비바람이 치기도 한다.
그래서 청소년들과 지내면서 터득한 지혜라면 쉽게 단정 짓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잘 맞아주면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켰던 아이도 공간에 와서는 음식을 만들어 친구들과 나눠 먹을 줄 알았다. 말없이 앉아 있던 아이가 어느 날부터 친구와 교사에게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고 무기력해서 어쩌나 걱정했는데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며 활짝 웃기도 한다.
청소년 공간에 있다 보면 이 사회가 규정한 평범한 청소년의 삶과는 거리가 먼 친구들을 만나기도 한다.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거칠고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나들며 생활하는 것을 보며 어디서부터 문제를 풀어야 할까 조급한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걱정된다는 이유로 확 다가가 아이들 삶에 개입하고 싶은 유혹에 흔들리고 밤새 고민한 적도 있다. 그래서 몇 차례 아이들 삶에 깊이 들어갔다가 멀어지기도 하며 나의 한계를 인정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켜본 뒤에 아이가 필요하다고 도움을 청할 때 개입하는 것이 지혜라는 걸 배우기도 했다.
얼마 전 늦은 밤에 카톡이 왔다.
냥이(별명)었다. 카톡을 여러 번 짧게 보내 왔는데 내용은 이랬다. 자퇴해서 검정고시 관련 자료를 뽑아야 하니 99℃ 문을 빨리 열어달라는 연락이었다.
고양이를 닮아서 냥이라고 불리는 이 아이는 좋고 싫음이 분명하고 자신이 즐거운 일, 필요한 일을 참 잘 찾으며 살아간다. 그러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유분방한 행동으로 위험의 경계를 넘어설 때면 화가 나기도 하고 답답했다. 붙들고 야단치기도 하고 밥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지만, 대화가 잘 이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인정하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계를 인정하고 아이의 세계를 받아들이게 됐다. 오랜만에 오면 밥 먹자고 하고 편하게 쉬다 갈 수 있게 하는 게 교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막 일어나서 온 듯한 모습으로 나타난 냥이는 오자마자 검정고시 관련 서류를 검색하고 프린트를 했다. 그리고 친구에게 전화해서 검정고시를 같이 준비하자고 한다. 상대 아이가 시큰둥하게 반응하니 잘 생각해 보라며 전화를 끊는다. 내게는 검정고시 준비하는 청소년을 지원해주는 곳이 없냐고도 물어본다. 그래서 ‘안산시학교밖지원센터’ 선생님과 연락해서 알려줬다.
냥이는 참 야무지고 똑똑하다. 처음 만날 때부터 지금까지 공간에서 탕후루를 만들거나 춤을 추거나 알바비를 못 받아서 해결할 때, 갑자기 공부하겠다며 문제집을 복사할 때, 생일 앨범을 준비할 때도 늘 친구들 속에서 중심 역할을 하고 챙겼다. 자신과 친구들한테 문제가 생기거나 해결할 일이 있을 때 내게 연락을 하는 것도 냥이었다. 정말 대단한 능력이다. 타인과 관계를 맺고 어려운 일이 생길 때 도움을 청해서 해결하는 능력은 쉽게 가질 수 없다. 더군다나 십 대 청소년이 말이다. 요즘처럼 공부만 하거나 방치된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능력이다. 알바를 해서 엄마 용돈도 드린다니 또 한 번 놀랐다.
날씨처럼 변덕스러운 시기를 보내고 자기 삶을 살아가는 냥이를 보며 기다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아이가 성장통을 겪느라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해도 곁에 있는 어른들은 흔들리지 말고 지켜보며 밥 먹이고 편하게 쉬게 하면 어떨까.
몇 년 전 격렬한 사춘기를 보내는 아들과 지내는 일이 너무 힘들다는 어머니께 “많이 힘드시겠지만 아무 말 하지 말고 눈 딱 감고 밥 먹이고 잠만 재우세요.”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다. 몇 년 후 아이는 돈 벌어서 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 드리고 싶다며 열심히 일했다.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답답한 한숨과 차가운 시선, 잔소리를 거두고 언제든 따뜻한 밥 한 끼와 편하게 쉴 수 있는 잠자리다. 인정하고 수용하면 아이들은 잘 자란다. 그렇게 기다리다 보면 어느 날 훌쩍 커서 건강한 어른으로 피어난다.
기다림 속에 꽃이 피고, 꽃이 피어야 향기가 난다.
사람도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