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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의 실사화 ‘인어공주’가 내년도 개봉을 앞두고 있다. 주인공 에리얼 역의 캐스팅은 2019년부터 지금까지 식지 않는 화제이다. 이유는 다름 아닌 배우의 피부색이다. 흑인 배우가 연기하는 인어공주에 거센 반발이 있다는 기사를 읽고 나니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해졌다. 하여 관련 게시물에 달린 댓글들을 직접 찾아보았다.
원작을 기반으로 하는 작품에는 설정과 배역의 싱크로율에 관한 지적이 따라붙기 마련이다. 웹툰을 드라마로 제작한 ‘치즈인더트랩’과 ‘이태원클라쓰’ 역시 그러한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인어공주’에 있어서도 사람들은 어느 정도 일관된 불편함을 토로한다. 백인으로 묘사된 에리얼 역에 흑인 배우를 캐스팅한 것은 설정에 맞지 않고, 캐릭터의 이미지와 일치하지 않아 실망감과 괴리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과도한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에 노출되는 것이 피로감을 준다고도 말한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스크롤을 내릴 때마다 해당 배우의 외모 비하와 인종차별적 표현들이 무차별적으로 쏟아졌다. 그 이유가 고작 상술한 ‘불편함’ 때문이라면, 납득할 수 있는가? 작은 불편함이 촉발한 비난의 세례가 여성이고 흑인인 대상에게 유독 가혹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불편함은 혐오의 표출을 정당화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이유를 불문하고 ‘혐오의 자유’란 존재하지 않는다. 차별과 폭력의 구조를 강화하고 재생산하는 혐오는 존중의 대상이 아니다. 오늘과 같이 불편함을 참지 못하고 혐오를 생산하는 우리 어른들의 대화를, 혹시라도 ‘인어공주’를 검색하는 아이들이 보게 될까 걱정스럽다. 계속해서 혐오표현이 생겨나고 난무하는 이 사회에서, 우리는 우리의 시민의식을 성찰해 보아야 한다.
우선, 자신이 가진 불편함이 정말 ‘불편함’인지를 바로 알 필요가 있다. 누군가가 PC에 불편함을 느낀다면, 다른 누군가는 혐오가 만연한 사회에 불편함을 느낀다. 어떤 이는 일상의 불편함을 가진 채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한다. 다른 이는 그 불편함을 알게 되는 것조차 불편하다고 이야기한다. 불편함으로 격하당한 ‘부당함’의 문제는 그저 듣기에 불편하다는 이유로 무시되거나 억압당한다. 모두 똑같은 불편함이 맞는가? 우리가 사용하는 ‘불편하다(不便하다)’라는 말은 이렇게 모호하다. 단어만으로는 그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어 모순적이기까지 하다. 지금껏 ‘불편함’이라 여기던 감정의 정체는, 어쩌면 혐오의 다른 모습일 수 있다.
어두우면 불을 밝히듯, 불편함을 느끼는 이는 그 순간부터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한다. 우리가 사회를 보며 느끼는 불편함은 그 자체로 사회의 문제점을 인식하게 만드는 지표의 역할을 한다. 그러니 불편함의 존재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과제이다. 사회는 계속 변화하고 있다. 더 이상 무언가를, 누군가를 혐오하는 것으로는 자신의 불편함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곳곳에서 나와 너의 불편함이 맞부딪히는 지금이 바로, 우리가 가진 불편함을 돌아볼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