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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멍석을 깔 수 있는, 멍석을 깔아주는 사람", 곽은주

신지은의 '마을人'

뉴스99 |

 

"느리게, 느리게 자기 속도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지역에서 문화예술을 핑계로 놀이의 멍석을 깔고 재미를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원래 성격은 분석적이고 냉철한 면이 두드러지는 데, 아이들을 키우면서 성격 많이 죽인 엄마이고, 관찰 속에서 타인과 자신의 장점을 찾아 헤매고 함께 성장하는 사람인 것 같다. 방향이나 지향점이 없는 곳에서 방향과 지향을 찾아가는 일, 자기이유를 잘 찾는 사람.

 

요즘은 미학 공부에 푹 빠져있다."

 

- 곽은주가 말하는 곽은주

 

발달장애인의 미술 작업을 지원하는 단체, 발달장애인이 예술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더 스페셜아트: 블루윙스>의 대표 곽은주.

 

발달장애, 예술가, 지원, 성장 등의 단어는 힘이 세다. 단어 하나, 하나가 전하는 영향이 선명하고 강렬해서 ‘한 사람’을 쉽게 규정할 것 같다. 곽은주는 그렇게 규정하기에는 아까운 사람이다. 세심하고 민감하고 복잡하고 입체적이다. 두 시간 남짓의 대화에 담긴 단어 하나하나와 잠깐의 멈춤까지 기록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하는 곽은주, 그녀는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발달장애인의 엄마 곽은주'

 

신지은 : 은주씨에게 제일 먼저 질문하고 싶었던 게 있어요. 은주씨 이름 앞의 가장 적절한 수식어는 무엇일까요?

 

곽은주 : 멍석을 깔아주는 사람이요. 멍석 깔아주면 자기들이 와서 놀잖아요. 그냥 와서 재미나게, 알아서 놀아요.

 

신지은 : 멋져요. 멍석을 깔아주는 사람! 은주씨가 깔아 놓은 멍석에는 주로 누가 초대를 받나요?

 

곽은주 : 발달장애인과 보호자들이 주로 초대를 받지요. 그들이 예술로 놀 수 있도록 멍석을 깔고, 환경을 조성하는 일을 하게 된 건 제 경험에서 시작되었어요. 제 딸 아이 민서는 발달장애인이고 여성이에요. 어린 여성 발달장애인은 성적으로 가장 취약한 대상이에요. 민서가 성폭력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가 가장 고민이었어요. 바우처 택시를 타도 택시 기사 아저씨가 그래요. 네가 민서야? 피부도 좋고 몸매도 좋고 얼굴도 예쁘네하고. 얼마나 소름이 끼치는지 몰라요. 민서가 어릴 때 ‘여성과 성상담소’에서 강사 교육을 받고 자원 활동을 했어요. 아, 그런데 얼마나 숨이 막히고 힘들었는지.

 

곽은주씨가 들려준 이야기, 발달장애인 가족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장애인 성상담을 하는 이들의 고충, 장애인을 만나지 않고 형식적인 지원만 이루어지는 장애인 복지시스템 등을 기록하고 싶다. 그녀는 발달장애인의 엄마다. 그녀의 목소리가 담담하기에 그녀의 시간이 어땠을지 그저 짐작할 수밖에 없다.

 

곽은주 : 한 달 동안, 두 달 동안 울고 다녔어요. 딸과 제 앞에 놓인 현실을 마주하면서 울고 다니다 마지막으로 찾은 게 예술이었어요. 미술을 하고, 음악을 하고, 예술이 그 안에 있으면, 삶이 낫지 않을까, 예술로 문화로 아이를 지원하자 그렇게 했지요. 가장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에서 조금씩, 조금씩 변화한 거지요.

 

'발달장애인의 예술 실천을 지원하는 실천가 곽은주'

 

곽은주 : 왜 병원에 가면 온 세상에 환자들만 있는 것 같잖아요. 내 아이를 보는 관점을 바꿔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장애인, 여성 장애인, 나약한 존재로서 딸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예술이라는 관점으로 아이를 바라보자, 남들이 안 바라봐줘도 내가 그렇게 바라보자, 아이가 예술과 함께 성장하면 그걸로 좋은 삶이 아닐까, 그렇게 믿었고 지금도 믿고 있어요. 예술가라는 정체성으로 딸을 바라보았기에 이만큼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신지은 : 저는 은주씨야 말로 예술가 같아요.

 

곽은주 : 아니에요. 저는 예술가 아니에요. 그냥 지원하는 사람, 환경을 만들어 주는 사람, 멍석을 까는 사람이지요.

 

신지은 : 그럼 예술 실천가라는 호칭은 어떤가요?

 

곽은주 : 아직은 어색한데요? 제가 좀 엉뚱해요. 대책 없고 어린 아이 같은 구석이 있어요. 한 발달장애인 엄마가 아이를 굉장히 힘들어 했어요. 뭐든 물건을 부수고, 물건을 부서서 다 해체하고 모아놓는다고 미치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 엄마한테 제가 그랬어요. 시각을 달리 해 봐라. 정말 멋지다. 아이가 해체한 부품과 조각을 다 모아보고 나열해 봐라. 그리고 영상을 찍고 기록으로 남겨라. 얼마나 멋지냐. 예술이다. 누가 그 엄마한테 제 말이 쓸데없이 희망이라고 그랬다는 거예요. 제가 말했죠. 야 그 사람은 질투하는 거야. 너와 너 아이한테 샘이 나서 그런다고.

 

신지은 : 예술가 맞네요. 시선을 달리 보는 일, 자기 문제, 자기 상황이라도 거리를 좀 두고 뭔가를 하는 게 예술 아닐까요?

 

곽은주 : 예술가인지 모르겠지만 예술에 대해서는 몇 가지 말하고 싶은 게 있어요. 하나는 예술에 대한 선입견이에요. 자기 아이 그림이 대상과 똑같지 않은데, 뭐가 잘 그린 거냐고 뭐가 예술이냐고 하는 보호자들이 많아요. 제 응수는 이래요. 야,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르네상스 시대도 아니고 똑같이 그려야 예술이라는 건 옛날이야기라고.

 

발달장애인의 예술 작업에 대해서도 얼마나 많은 편견이 있는지 몰라요. 발달장애인의 예술은 예술이 아니라 복지 영역에서 다뤄져요. 불쌍한 아이들이 뭔가를 하는 걸 좋은 마음으로 지원해 준다는 식이에요. 문화재단도 그런 식이고, 예술교육도 그런 식이에요. 발달장애인 미술 교육 강의가 들어와서 가 봤더니, 이면지를 사용하라는 거예요. 돈이 없다고, 돈이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니에요. 발달장애인이 그림을 그리는데 이면지면 어떻냐고.

 

 

'사회 실천가, 엄마, 동네 사람 곽은주'

 

신지은 : 투쟁적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발달장애인 보호자로 사는 일은.

 

곽은주 : 딸 민서를 지원하려고 살면서, 단체도 만들고 연대도 하게 되었어요. 장애인 문화예술활동 지원 조례도 만들고, 사회적 인식도 바꾸어 가고 있고.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게 있어요. 우리가 단체를 운영하는 건, 운동을 하는 건 내 새끼 잘 키우려고 하는 거잖아요. 단체를 크게 만들려고, 단체를 잘 운영하려고, 사회를 바꾸려고 하면서 우리가 바쁘게 사는 동안, 내 새끼는 저기 혼자서 방치되면 그게 뭐냐고 그러면 안된다고 계속 이야기해요.

 

신지은 : 장애인 지원 단체가 아니더라도, 공동체와 사회 실천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면 생각해 봐야 할 중요한 지점으로 들립니다.

 

곽은주 : 지원 사업도 마찬가지에요. 아이가 예술 작업에 몰두하고 표현하는 게 첫 번째인데, 공모, 프로젝트, 지원 사업에 기대기 시작하면 본질이 사라져요. 일만 하는 거죠. 계획서 쓰고 정산하고 조직 운영하고. 현재 블루윙스는 지원 사업을 받지 않는 쪽으로 가고 있어요.

 

신지은 : 블루윙스의 운영 방식도 남다를 것 같아요.

 

곽은주 : 저희는 느슨하고 산만해요. 어떤 의제를 가지고 회의를 하면 여기서 이런 말, 저기서 저런 말, 회의는 계속 산으로 가지요. 재미있어요.

 

곽은주에게 동네 생활은 어떤지 물어 보았다. 그녀는 오래된 월피동 아파트 단지의 생활이 자신과 가족을 위해 딱 맞다고 말했다. 학원이고, 미용실이고, 병원이고 뭐든 동네에서 다 해결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동네에 오래 살다 보니 장인의 솜씨를 가진 미용사와, 텃밭에서 키운 채소를 파는 노점상을 자랑했다.

 

 

'숙제를 기회를 바라보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 곽은주'

 

신지은 : 곽은주를 살아가게 하는 힘은 뭘까요?

 

곽은주 : 천진한 거? 생각 없는 거? 계산 없이 내 욕구에 충실한 거? 하하하. 제가 좀 그래요. 남들 눈치 안 보고 사는 천진함이 있어요. 어떤 사람은 숙제가 막 쌓였다고 괴로워 하는데, 저는 그래요. 그건 기회야. 기회라고.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현재를 그냥 있는 그대로 그냥 보는 사람이에요.

 

인터뷰를 준비할 때 질문이 있었다. 10년 후의 당신은 어떻게 살아가냐는 질문이었다. 우문이었다. 곽은주는 현재를 현재로 바라볼 수 있는 투명하고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

 

곽은주의 페이스북 이름에는 ‘광’이라는 접미사가 붙어 있다. 빛 날 광光이다. 존재가 빛나는 게 무엇인지 잠시 생각해 본다. 그녀는 자신을 멍석을 깔아주는 사람, 지원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그녀에게 전하고 싶다. 그 멍석을 깔아주는 존재가, 지원하는 존재가 어떤 누구보다도 빛나고 있어서 참 고맙고 감사합니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