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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고동락(東古同樂) 세 번째 글입니다
하늘이 맑고 높아지는 가을입니다.
“산 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 《자화상》 윤동주 시인
“天高聽卑 (천고청비) 하늘은 높이 있지만 낮은 곳에 귀를 기울인다.”
-弓乙歌(궁을가)
자연의 가을은 수확과 결실의 계절이지만, 우리에게는 서늘해진 바람과 함께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보는 성찰과 반성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脫井(탈정) 우물에서 벗어나다
- 『장자』
나무가 여름내내 무성했던 나뭇잎을 낙엽으로 털고 자신의 빈 몸을 직시하듯이 자신이 갇혀있는 우물(井)을 인식하는 것이 성찰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우물안의 개구리(井底䵷)와는 바다를 얘기할 수 없다.” 『장자』 외편 「추수(秋水)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동양고전(東洋古典)을 읽는 이유는 인간주의(人間主義), 인성(人性)의 고양, 사람과 사람,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동양사상을 통해 돈과 상품에 의해 인간성이 파괴되고 거꾸로 노동이 소외되는 우리사회 천박한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는 대안적 삶의 가능성을 찾아가는 일과 관련이 있습니다.
자유(自由)에는 자유가 없다
사상과 양심, 신념의 자유가 온전히 보장되지 않는 나라에서 부패한 정치권력이 주장하는 자유(自由)는 모든 것을 누리는 사람들만의 자유일 뿐입니다. 그곳에 공정과 정의는 없습니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수십 번 반복했다는 ‘자유’, ‘연대’란 마치 장마철에만 가득차서 흐르다 넘치는 도랑처럼 극단적인 이념대립을 부추겨서 부도덕한 권력을 유지, 지속시키기 위한 수단의 언어일 뿐입니다. 그런 우려를 매일매일 확인해야 하는 현실이 우리를 더 고통스럽게 합니다.
잘못된 과거를 제대로 청산해 보기는커녕 과거가 은폐되고 있는 역사를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과정과 역사는 잊어버리고 오로지 결과만을 보는 천박한 사회에 살게 되었습니다. 떳떳함을 잃고 자신의 잘못을 덮기에만 급급하고 부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어떠한 말과 행동을 해도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또한 우리가 지난 30여년간 최악의 불평등지수, 경쟁과 차별, 성장중심의 자본주의를 국가적 목표로 하여 매진하고 있는 한, 참혹한 전쟁과 학살, 억압과 착취의 자본주의 어두운 역사는 우리 앞에 선명하게 드러날 수 없습니다. 모든 침략과 수탈까지도 합리화되고 미화되고 선망이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기생충’과‘ 오겜’에서 봐야할 것은 불평등에 상처입은 자화상이다
늘지 않는 하위 90% 가구소득. 계급 세습도구로 전락한 교육,
세계 최저 출생률, 최고 자살률 물질적 성공을 이룬 나라가 심각한 정신적 불행감에 직면하고 있다. 패배한 자가 차별을 감내하는 소름 돋는 경쟁‧성장 제일주의
- 《한국의 불평등 현황, 이론, 대안》 한울아카데미
타인을 짓밟고 이기는데 몰두하면 주위와 현실을 돌아볼 여유가 없습니다. 경쟁은 무관심과 현실순응을 조장하며 진실을 왜곡하고 상호의존적인 관계망으로 이루어진 세상의 질서를 거스릅니다.
밀란쿤테라는 ‘권력에 대한 인간의 투쟁은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이라고 했습니다.
과거를 망각하지 않고 끊임없이 상기하는 것이야말로 약한 처지의 개인이나 집단이 취하는 방책입니다.
자기(自己)의 이유(理由), 자기의 의지(意志)라는 진정한 의미의 자유(自由)는 새로 쓰여져야 합니다. 편협한 이념과 체제를 대변하는 말이 아니라 인간의 주체적인 삶, 주인된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고귀한 단어입니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飛上)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이라고 일갈한 시인의 말처럼 인류의 진보를 가능케한 인간해방의 단어입니다.
“우리사회에서는 백이면 백이 거의 다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들이 자유가 사랑을 가진 사람들의 자유를 방종이라고 탓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에 자유는 없습니다.
그의 자유는 인간의 가장 높은 본성과 관계되는 것이기 때문에 완전하게 주어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 김수영 시인 ‘4.19와 자유’
약육강식, 무한경쟁을 삶의 방식으로 배우고, 살아 온 우리는 지금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을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만 합니까?
이제 진지하게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할 때입니다.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
- 『논어(論語) 자로(子路)』
‘군자는 화합하지만 부화뇌동하지 않고 소인은 같음에도 화합하지 못한다.’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 공존하지 못한다.’
정치는 다음 세대가 더 나은 세상에 살 수 있도록 다양한 의견을 모으는 일입니다. 정치란 다양성을 수용하고 그 사회의 잠재적 역량을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차별과 패권주의는 민주주의의 최대의 적입니다.
서있는 자리가 다르면 세상도 달라 보입니다. 흑과 백, 선과 악, 옮은과 그름, 아름다운과 추함에 대한 이분법적인 사고에 집착하는 이들은 그 사이에 있는 수많은 차이를 간과하고 있습니다. 붕당과 파벌, 전체의 이익보다는 자기개인, 자기집단의 이익을 앞세우는 세력이 정치와 사람들의 삶을 주도하는 사회는 희망이 없습니다.
외세에 의한 식민지, 전쟁과 분단이라는 세기적인 고통을 겪고 있는 우리로서는 고통의 뿌리인 분단과 패권적인 냉전질서를 해체하고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는 일, 그래서 우리 힘으로 평화적인 통일과정을 만들어내는 일이 민족적인 과제이면서 세대의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논어(論語)의 화동론(和同論)은 근대사회 즉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을 가장 명료하게 드러내는 담론이라고 생각합니다. 화(和)는 자기와 타자의 차이,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관용과 공존,평화의 논리입니다. 반면에 동(同)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획일적인 가치만을 용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배와 흡수, 합병의 논리입니다. 동의 논리아래서는 단지 양적 발전만이 가능합니다. 질적 발전은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화의 논리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신영복 『강의』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세한연휴 지송백지후조)
- 논어 제9편 27장
날씨가 추워진 후에야 소나무과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
실학의 정신을 예술로 승화시킨 조선말 추사 김정희의 대표작 『세한도(歲寒圖)』에 나오는 글씨로도 잘 알려진 말입니다. 자연의 이치가 그렇듯이 사람이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련과 고통속에서 진실된 사람의 참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날이 추워질수록 사람이 그리운 계절입니다.
우리가 눈발이라면
- 안도현(시인)
우리가 눈발이라면
허공에다 쭈볏쭈볏 흩날리는
진눈깨비는 되지 말자
세상이 바람불고, 춥고 어둡다 해도
사람이 사는 마을
가장 낮은 곳으로
따듯한 함박눈이 되어 내리자
우리가 눈발이라면
잠못드는 이의 창문가에서는
편지가 되고
그이의 깊고 붉은 상처위에 돋는
새살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