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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일부 조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호소 의견서

이경원의 통일이야기

뉴스99 |

 

현재 국가보안법 제2조, 제7조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청구에 따라 헌법재판소에서 공개 변론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글은 헌법재판소에 정의·평화·인권을 위한 양심수후원회의 이름으로 제출된 글입니다.

 

 

국가보안법 일부 조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호소 의견서

 

대한민국은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루고 선진국이 되었다고 자랑합니다.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되었다고도 하고, 역사의 구비 마다 권위주의에 맞서 거리에 나섰던 지난날의 민주화 과정은 선진국들마저 부러워하는 모범이었습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심각한 장애를 가진 민주주의였고, 기형적인 선진국이었습니다.

민족분단의 비극이 낳은 국가보안법은 분단구조를 고착시키는 장치였고, 민주주의를 탄압하는 도구였습니다. 그 안에서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모든 국민은 상상력을 거세당한 채 악마의 구렁텅이에서 스스로 검열하며 살았습니다.

국가보안법이 만들어 놓은 사회구조에서 생존권을 위한 노동의 현장이 빨갱이로 낙인 되고,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부모들마저 빨갱이가 되어야 했습니다. 나라의 통일을 위해 나선 사람들은 ‘친북 좌빨’이라 불리고 ‘북으로 가서 살아라.’는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어느 일방은 이들에게 붉은 딱지를 붙여댔고, 국가보안법은 권력의 필요에 따라 전가의 보도가 되어 칼춤을 추었습니다.

 

남과 북은 유엔에 동시에 가입하였고, 북에 대해서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남과 같은 국가로 인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과 북의 정상이 동등한 자격으로 수차례나 정상회담을 하고 합의서를 발표한 조건에서 아직도 시대착오적인 악법으로 북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통일을 지향시켜나가는 것이 온 겨레의 지향이라는 것은 명확한데, 국가보안법은 오로지 북을 적으로 규정할 때만이 효력을 발휘합니다. 분단을 강요할 때만이 위력을 떨치는 헌법 위의 악법입니다. 모든 국민이 아는 이 사실을 법을 해석하고 다루는 사람들만이 국가보안법에 인공호흡기를 달아줍니다. 분단을 통해 권력을 유지하는 자들만이 국가보안법의 수호신을 자처합니다.

 

어떤 이는 누구 것인지도 모르는 책이 여러 사람이 근무하는 사무실에 꽂혀 있다는 이유로 이적표현물 소지가 되었고, 어떤 이는 전혀 의심도 없던 책이 어느 기관의 판단 하나로 이적표현물 소지가 되기도 했습니다. 정부의 반통일성을 폭로하거나 미국의 패권과 정권의 예속성을 이야기해도 고무, 찬양, 동조, 선전, 선동이 되어버리는 것이 국가보안법입니다. 입에 재갈을 물리고 탄압하려는 의도 말고 무엇이 있겠습니까? 말할 권리, 광장에 모여서 주장할 권리, 사람을 모아서 조직하고 행동할 권리가 국민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은 이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반인권, 반민주적 악법이라는 반증입니다.

 

법리를 적용함에 있어서 용어의 규정이나 범위, 해석에서 명확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 7조는 뭉뚱그려 적용하기 일쑤입니다. 고무, 찬양, 동조, 선전, 선동의 의미가 각각 다름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 또는 이에 동조하였”다고 뭉뚱그려 기소하면 법원은 그대로 인정해 주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국가보안법 말고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까?

 

이제 학자들이 반쪽짜리 학문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국민들이 ‘이 말을 해도 되는 것인지’ 자신의 말을 검열하는 시대를 벗어나야 합니다. ‘빨갱이’라는 색깔을 붙여 기본권을 억압하는 참혹한 현실을 극복해야 합니다. 통일을 하려고 해도 북을 알아야 통일을 할 수 있습니다. 북을 아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계의 양심이 손가락질하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습니다. 철학이 숨 쉬고 상상력이 있어야 미래가 있습니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것은 국가의 자존심을 살리는 것이고 국민의 존엄을 높이는 일입니다.

헌법재판소의 권위가 드높게 떨쳐지기를 기대합니다.

 

2022년 10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