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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고동락(東古同樂) - 동양고전으로 세상읽기> 함께 나누는 세상을 위하여

이영록(뉴스99 운영위원)

뉴스99 |

 

동고동락(東古同樂) 두 번째 글입니다.

여럿이 함께 즐거운 삶을 찾자는 취지로 글을 시작했는데 요즈음 세상이 많이 어지럽습니다. 잘못된 과거로의 역주행(逆走行)은 큰 비에 물이 역류하듯이 우리들의 삶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弱者)가 가장 먼저 피해를 당하겠지만 결과는 공동체 모두의 재난입니다.

 

오늘 주제로 다룰 내용은 끊임없는 전쟁과 파멸적인 폭력의 시대였던 중국 전국시대에 반전(反戰), 평화(平和), 겸애(兼愛), 평등사상(平等思想)을 외치며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온몸으로 실천했던 묵자墨者, 묵가墨家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참담한 전쟁의 시대에 희생의 대상이었던 기층 민중들에게는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실현하자는 주장이 가장 다급하고 현실적인 주장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신분제 사회에서 모든 사람들을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고 세상을 앞서간 주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시대에는 ‘유가와 묵가의 무리가 천하에 가득찼다’ 『회남자』고 할 만큼 시대 대세였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지와 사랑을 받는 학파였다고 합니다.

 

절대군주제와 관료, 계급 신분사회가 정착되고 공자의 유가(儒家)가 지배 주류사상이 되면서 묵가(墨家)는 지난 2천년 간 사라졌다가 19세기 말에 와서야 재조명됩니다. 장구한 역사 속에서 거친 민중들의 삶만큼이나 기구한 운명을 지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많이 생소하고 관련한 책도 많지 않습니다.

 

오늘 내용은 ‘묵자-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사상가-시대의 창’

‘신영복의 강의-돌베개’에서 글의 취지에 맞는 내용을 인용, 참고하였습니다.

 

함께 나누는 세상을 위하여

 

‘미래-같이’. 신문 일간지에 전면광고로 게재된 모 대기업 광고카피 입니다. 세련된 광고이미지와 함께 볼수록 잘 만든 문구 같습니다. 기업이 AI(인공지능)와 같은 인류의 미래를 위한 기술을 선도하고, 함께같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앞장서서 실현하겠다는 내용으로 이해됩니다.

 

우리 사회의 재벌이라고 얘기하는 대기업들의 기업 이미지는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경제적 영향력도 막강하고 대중적인 관심사인 일자리와 사회를 풍요롭게 하는데 앞장서는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대기업 사주의 엄중한 불법행위에도 벌주지 말자는 우호적인 여론으로 사면되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행복과 미래를 선도하겠다는 기업광고 일간지 이면에는 가족들이 생활고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기사가 끊임없이 실리는 것이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진실입니다.

 

또한 지난시기 식민지 수탈과 참혹한 전쟁을 겪었던 우리 민족은 아직도 전쟁과 폭력의 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러나 지금도 분단과 이념갈등으로 매년 전쟁연습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天下兼相愛則治 相惡則亂 (천하겸상애즉치 상악즉난)

천하가 서로 겸애하면 평화롭고 서로 차별하고 증오하면 어지러워진다.

묵자墨者(BC 479-381)의 『兼愛(겸애)』편에 나오는 문구입니다.

겸애란 더불어,두루 사랑한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사람들을 평등하게 대해야 어지럽지 않다는 뜻입니다. 계급을 부정하는 평등사상(平等思想)입니다.

 

묵가들은 당시 패권과 전쟁이 난무하던 시대상황을 ‘파멸적 위기’로 파악했습니다.

 

有三患 飢者不食 寒者不衣 勞者不息 (유삼환 기자불식 한자불의 노자불식)

백성들은 세가지 고통을 받고 있다. 배가 고픈 자는 먹을 것이 없고, 추운 자는 입을 옷이 없고, 일하는 자는 쉴 틈이 없다.

 

묵자가 바라봤던 2천년 전의 중국 전국시대 상황과 오늘날의 우리시대가 얼마나 많이 달라졌을까요?

 

强必執弱(강필집약) 富必侮貧(부필모빈) 貴必傲賤(귀필오천) 詐必欺愚(사필기우) 凡天下禍簒怨恨(범천하화찬원한) 其所以起者(기소이기자) 以不相愛生也(이불상애생야) -『兼愛(겸애)』

 

강한 자는 약한 사람을 위협하고,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기며, 귀한 사람은 천한 사람에게 오만하면, 간사한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며, 세상의 어지러움과 원한, 찬탈이 생기는 근본원인을 서로 겸애하지 않고 상생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必知亂之所自起 能治之 (필지난지소자기 능치지) -『兼愛(겸애)』

세상의 혼란을 바로잡으려면 그 원인을 알아야 하고, 그 원인을 밝힌 다음에야 능히 고칠 수 있다.

 

당시

묵자는 이 문제를 근본적인 관점에서 모든 사람들이 서로 이롭도록 정치와 법,제도를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묵자가 주장했던 겸애(兼愛)사상도 종교적인 의미의 일방적인 사랑과 헌신이 아니라 서로 함께 살고(상생-相生), 서로 이익을 나누는(교리-交利) 이론으로 경제적 상호이익과 협동적 연대(連帶)라는 실천적 방식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묵자의 겸(兼)은 세상의 모든 사람을 차별없이 똑 같이 사랑한다는 뜻입니다.계급사회의 차별에 대한 비판입니다. 이 차별(別)이야말로 공동체적 구조를 파괴하는 가장 근본적인 해악이다. 나와 남의 차별에서 시작하여 계급과 계급, 지역과 지역, 집단과 집단 간의 차별로 세상이 어지러워지고, 전쟁이 일어난다는 주장입니다.” 신영복의 『강의』

 

묵자는 그 시대를 앞서간 사상에서 뿐만아니라 무엇보다도 실천에 있어서도 모범적인 전형을 보여줬다고 합니다. 실천 방법이 개인주의적이거나 개량주이적이지 않고 언제나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입니다. 무엇보다도 근검절용(勤儉節用-부지런하고 검소하며 쓰임을 절제)하며 검소한 실천가의 품모를 지녔다는 것입니다,

그런 진정성이 당시 기층 민중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였을 것입니다.

 

묵가에는 자신들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엄격한 집단조직규율이 있었다고 합니다.

 

其言必信 其行必果 其諾必誠 不愛其軀 赴士之厄困 (기언필신 기행필과 기락필성 불애기구 부사지액곤)

그 말은 믿을 수 있고, 그 행동은 반드시 결과가 있으며, 한번 승낙하면 반드시 성실하게 이행하고,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사람들의 어려움을 덜기 위해 뛰어든다

 

오늘날 우리사회 정치(政治),정치가(政治家)가 가져야 할 가장 절실한 덕목입니다.

논어의 안연(顏淵)편에는 정치란 뿌리를 바르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회를 바르게 유지하는 근본입니다. 뿌리가 바르고 튼튼해야 줄기와 잎이 잘 자라고 열매를 맺어 세상을 풍요롭고 건강하게 만들텐데 우리 정치의 모습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의 우리 사회에선 이 말이 더 맞지 않을까요? “정치하는 사람의 말은 믿을 수가 없고, 그 행동은 결과가 없으며, 한 번 한 약속은 지키지 않고 사회적 약자들의 어려움보다는 자신의 몸을 먼저 돌보는데 앞장선다”

그렇지않은 경우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묵자에 비판적이었던 맹자(孟子)도 ‘묵가는 보편적 사랑을 주장하며 정수리에서 무릎까지 다 없어진다 하더라도 천하를 이롭게 하는 일이라면 그것을 행동에 옮기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無鑑於水 鏡於人 (무경어수 경어인) -묵자墨者

물을 거울로 삼지 않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다. 과거에는 물을 거울로 삼았습니다.

물속에 비친 겉모습에 현혹되지 말고 사람들 속에서 자신을 세우고 비추라는 뜻입니다. 외형보다는 본질을 봐야한다는 내용입니다.

 

진보적인 철학사상가들을 많이 배출했고, 세계에서 가장 이성적이라는 독일민족에게서 히틀러라는 광기의 정치가가 등장했고, 1920년 초반 자본주의 최대 위기였던 세계공황의 탈출구는 수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세계 2차대전 이었습니다. 거의 10년마다 벌어지고 있다는 현대사의 참혹한 전쟁 이면에서 자본의 탐욕과 패권을 추구하는 부패한 정치가 있습니다.

역사 무대의 뒤편으로 사라졌던 묵자墨者가 다시 소환되는 이유입니다.

 

“묵자는 중국사상사에서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최초의 좌파 조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국시대의 패권적 질서와 지배 계층의 사상에 대하여 강력한 비판 세력으로 등장하여 기층 민중의 이상을 처음으로 제시하였습니다. 투철한 신념과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대중 속에서 설교하고 검소한 모범을 보였으며, 서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묵자가 죽은 후에도 200여 년 동안 여전히 세력을 떨쳤지만 그 후 2천 년이라는 긴 망각의 시대를 겪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묵가는 좌파사상과 좌파 운동이 그 이후 장구한 역사 속에서 겪어 나갈 파란만장한 드라마를 역사의 초기에 미리 보여준 역설적인 선구자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영복의 『강의』

 

동고동락 두 번째 내용은 오늘 내용의 의미를 담아 이문재 시인의 ‘나는 걷는다’라는 시로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음이 맞는 벗과 동행(同行)를 하면 더 좋겠지요.

 

나는 걷는다.

- 이문재

 

나는 걷는다.

하늘 맨 아래에서

바다의 맨 위로

내가 걷는다.

서편하늘 초승달이

해를 내려다보는 초저녁이다.

 

나는 걸었다.

자궁에서 나온 길은

모든 무덤으로 이어져 있었다.

모든 길은 땅으로부터

한 치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바다에도 단 한 뼘 빈틈이 없었다.

 

나는 걷는다.

젖은 신발 벗어

해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달의 뒤편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오래된 책을 굳이 읽지 않는다.

전쟁과 전쟁사이가

평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간이 어떤 의지를 갖고 있으리라고

나무가 인간을 먼저 배려하리라고

나는 믿지 않는다.

 

국가는 걷지 않는다.

기업은 걷지 않는다.

경전은 걷지 않는다.

문명은 걷지 않는다.

인류는 걷지 않는다.

 

나는 걷는다.

내가 걷는다.